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 그녀는 무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수많은 대작들 틈에서 유독 <모나리자>가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녀가 가진 신비로운 미소 때문인데요, 그녀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 미소에 대해 '웃고 있는 건지 우울한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알 수 없는 미소'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1506년
그녀의 미소가 이토록 미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품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간의 표정을 좌우하는 그녀의 눈꼬리와 입가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그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법은 다빈치의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번 아트딕셔너리에서는 <모나리자>의 미소에 숨어있는 다빈치의 특별한 기법에 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스푸마토(Sfumato) : 미소의 비밀
스푸마토란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유래된 단어로, 물체의 색을 자연스럽게 번지게 하여 마치 대상이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그 윤곽선을 불분명하게 보이게 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이 스푸마토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직접 고안하여 사용한 기술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스푸마토 기법을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밑바탕에 엷은 색을 여러 번 덧칠했으며, 때때로는 손가락, 천 등을 사용해 물감을 조심스럽게 문대는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모나리자>의 일부분들을 확대한 모습
다빈치는 인간의 표정을 좌우하는 모나리자의 눈꼬리와 입꼬리 등을 스푸마토 기법으로 처리하여 빛의 상태에 따라 그녀의 눈과 입술의 윤곽선의 위치가 달라 보이게 했습니다. 다빈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꼬리와 눈꼬리의 윤곽선을 상상하게 만들어, 그녀의 표정을 판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나리자의 알 수없는 미소 속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스푸마토 기법과 대기 원근법
스푸마토 기법은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대기 원근법을 고안하면서 이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기법입니다. 여기서 대기 원근법이란 색채 원근법의 일종으로, 대기(공기) 중에 습도와 먼지의 작용으로 물체가 멀어질수록 푸르스름해지고 채도가 낮아지며, 물체의 윤곽이 흐릿해지는 법칙을 이용해 거리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저서 ‘회화론’에서 “가까이 있는 사물의 밝은 부분은 먼 곳의 밝은 부분보다 더 밝으며, 원경의 어두운 부분은 근경의 어두운 부분보다 덜 어둡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붉은 색조를 띠며 먼 곳에 있는 사물은 푸른 색조를 띠는데, 이는 우리의 눈과 사물 사이에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며 ‘대기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실제로 창문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보면, 가까이 있는 산봉우리보다 멀리 있는 산봉우리가 더 연하고, 푸르며, 흐릿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색으로 표현하여, 화면 내에 공간감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대기 원근법입니다. 더불어 다빈치는 대기 원근법을 스푸마토 기법과 함께 사용하면서, 점점 밝아져가고 점점 어두워져 가는 연속적인 색의 변화로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대기 원근법과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지 않은 그림과 사용한 그림 (좌)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 / (우) 레오나르도 다빈치, <막대기를 든 성모>, 15C
다빈치가 대기 원근법을 고안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대상의 형태를 뚜렷이 그리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위 두 그림 중 좌측의 그림은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으로, 작품 속 대상들의 뚜렷한 경계가 잘 드러납니다. 반면 우측에 위치한 다 빈치의 작품은 명확한 선이 없으며, 단지 다른 음색 사이의 변화를 제공하는 부드러운 음영만 느껴집니다. 또 인물 뒤에 보이는 풍경이 더 흐릿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깊이에 대한 착각을 키우고 전경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대기원근법에 숨어 있는 현대과학
미술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기 원근법은 그가 과학적인 이론들을 미술에 접목시키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가 말한 원근법의 원리는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대상에 미치는 빛의 강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줄어든다’는 현대의 물리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림과 사진에서 나타나는 대기 원근법의 예시 (좌)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리젠 산맥의 아침>, 1810~1811 / (우) 리젠 산맥의 실제 사진
또한 현대 과학의 연구를 통해 빛이 대기 중의 먼지나 수증기를 통과할 때 산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는데요. 산란의 정도는 빛의 파장에 따르지만, 그중 푸른색은 가장 짧은 파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거리가 먼 물체는 특히 파란색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불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들과 미세한 꽃가루들, 그리고 물 분자들이 빛을 산란시키고 빛의 진동 횟수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광원에서 나오는 색의 선명도가 점차 흐려지는데요. 이는 레오나르도의 대기 원근법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에서 대기 원근법을 포함한 대부분의 원근법들은 더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할 공식이 아닙니다. 실제로 현대의 많은 작가들은 원근법을 따르지 않는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 속에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다빈치가 고안한 스푸마토 기법과 대기 원근법을 사용하는 작가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초고화질 카메라의 세밀한 풍경보다 필름 카메라의 화면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듯 대기 원근법과 스푸마토가 만들어낸 안개 속의 풍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